
여행을 많이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주변에서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지금까지 여행했던 곳 중 어디가 제일 좋았어요?”
사실 이 질문을 받으면 보기만 해도 눈물 나게 아름다운 풍경이나 인생에서 가장 맛있게 먹었던 음식 혹은 아직까지도 지워지지 않는 아주 특별한 경험들이 떠오를 것 같지만, 언제나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집과 동네 그리고 사람들이다. 이 세 가지 키워드는 사실 어느 나라에 가든 존재하고, 대부분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디 하나만 쏙 골라 대답하기가 참 난감하다. 사실 ‘제일’이라고 하는 것에는 너무나 사적인 기준과 기호가 뒤섞여 만들어내는 신기루 같기도 하고.

여행할 때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크게는 두 가지다. 집과 동네. 동네와 집이라고 해야 할까 순서를 잠깐 고민할 정도로 이 둘은 비등한 무게로 중요한데, 이 두 단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잠깐 여행이 아니라 이사를 가야 한다고 생각을 한 번 해보자. 그럼 우리는 ‘어떤 집에 살고 싶은가’와 동시에 ‘어떤 동네가 좋을까’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❶ 가능한 역세권과는 떨어져 있어 조용하고,
❷ 단골이 되고 싶은 카페와 빵집이 하나 정도 가까이에 있으며
❸ 산책하기 좋은 길이나 공원이 있는 곳. ❹ 마지막으로 유기농 식재료를 살 수 있는 마트까지가
나에게는 최소한의 동네 조건이다.
여행지에서 숙소를 고를 때도 비슷한 기준을 적용한다. 숙소를 중심으로 매일 드나드는 길목, 필요한 것을 대부분 구할 수 있는 마트, 아침 일찍 여는 빵집, 편안한 차림으로 드나들 수 있는 카페, 식사 후 가볍게 산책할 수 있는 공원만 있어도 충분해진다. 물론 여기에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요소가 추가될수록 만족도는 커지는데. 나로 예를 들면 치즈와 햄을 전문으로 다루는 고급 식재료 상점과 와인 가게, 꽃집 그리고 자전거 정류소가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누군가는 이쯤 되면 지금 ‘우리가 여행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맞는 걸까요?’라고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놀랍게도 그렇다. 나에게 여행은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 일상의 연장선이기 때문이다. 우선 여행지에 도착하면 며칠 정도는 아무런 정보도 찾아보지 않고 집과 동네를 중심으로 생활한다. 그러다 지도를 보지 않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 정도로 주변에 익숙해지면 조금씩 반경을 넓혀가기 시작한다. (20대 때는 숙소 여러 곳을 옮겨 다닐 열정과 에너지가 있었지만 30대 중반이 되니 체력이 허락하지 않아 가능하면 한 곳에서 머무는 걸 선호한다.)

여행 중 제일 좋아하는 시간은 식재료를 사서 주방에서 요리를 할 때다. 타이밍이 맞으면 주말에 열리는 파머스 마켓에 가서 농부들에게서 신선한 제철 채소와 과일을 구입한다. 어떤 환경에서 나고 자랐는지에 따라 같은 종류의 재료도 맛이 다 달라서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나 유제품의 경우에는 수입이나 가공제품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차원이 다른 신선함을 맛볼 수 있기에 필수로 먹어준다.)
가능하면 이동은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하는 편이다. 계절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음은 물론이고, 목적지로 가는 여정에서 뜻밖의 발견과 즐거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전거 도로와 시스템이 잘 갖춰진 나라는 자동차와 비슷한 넓이의 쾌적한 도로, 자전거 전용 신호등도 있어 부러움을 넘어 샘이 난다.)
그 무엇보다도 여행에서 가장 큰 영감을 가져다주는 건 다름 아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직업도 사는 곳과 방식 등 모든 것이 다 달랐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삶을 주체적으로 즐길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퀼트를 취미로 하고 크리스마스를 3달 전부터 준비하는 런던 할머니, 점심을 먹은 뒤에는 꼭 낮잠을 자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 루틴인 베를린 할아버지, 가마쿠라의 어느 바다 앞에서 게스트하우스와 햄버거 가게를 운영하며 자유롭게 살아가는 일본 청년까지. 다채로운 삶을 목격하면서 자연스럽게 나는 어떤 형태의 삶을 살고 싶은지를 질문하게 되었고, 그게 어떤 모양이든 괜찮다는 안도감을 얻게 되었다.
'이런 여행을 10년 넘게 이어오다 보니, 어느 순간 여행과 일상의 경계가 흐려졌다. 이 먼 곳까지 왜 굳이 떠나오는 걸까 싶다가도, 문득 깨닫는다. 이게 내가 바라던 삶이라는 것을. 여행을 일상처럼, 일상을 여행처럼.’
_책 <여행의 감각> 中
낯선 타지에서 가장 평범한 하루를 살아보는 일. 그곳의 동네를 걷고,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사람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는 시간. 그렇게 타인의 일상을 잠시 빌려 살아보고 나면, 돌아온 나의 일상도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 너무 익숙해서 당연하게 여겼던 집 앞 골목과 단골 카페, 동네 마트와 산책길이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결국 나에게 여행이란, 떠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돌아오기 위함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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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 무과수 @muguasu
필명 무과수는 어루만질 ‘무’, 열매 맺는 나무인 ‘과수’를 더해 만든 이름으로, 가진 재능을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데 쓰고 싶다는 뜻을 담고 있다. 독립출판 〈무과수의 기록〉 시리즈와 《안녕한,가》 《여행의 감각》 등을 펴냈으며, 평범한 일상을 특별하게 바라보는 기록을 14년 째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Illustraion. 사키 @saki_svn
사키(saki)는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아티스트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장면과 사물, 어린 시절부터 오래 보아온 익숙한 이미지에서 영감을 얻어 특유의 색과 형태로 새롭게 풀어낸다. 평면 작업을 기반 으로 패션, 뷰티, F&B, 라이프스타일 등 다양한 분야와 협업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