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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다움이 담긴 나의 물건

박찬용



𝗪𝗿𝗶𝘁𝗲𝗿 Chanyong Park @parcchanyong

𝗜𝗹𝗹𝘂𝘀𝘁𝗿𝗮𝘁𝗶𝗼𝗻 Dongju Seol @skinheduck

𝗘𝗱𝗶𝘁 Seulgi Lee 

𝗗𝗲𝘀𝗶𝗴𝗻 Dayeon Lee


몇 년 전 잡지사 마감 끝난 크리스마스 연휴의 어느 날 나는 갑자기 방에서 멍하니 있기가 너무 싫어졌다. 어디든 가야겠다는 충동에 사로잡혀 생각보다 비행기가 싸다는 이유만으로 그 다음날 출발하는 괌 항공권을 샀다. 괌에서는 렌터카를 타고 섬을 돌기만 하다가 스투시 매장에 가서 스투시 괌 티셔츠를 샀다. 이건 괌에서나 살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면서. 관광지 시장에서 지나치게 크다 싶게 'GUAM'이라고 적힌 티셔츠도 샀다. 


그 즈음 지역 이름이 대놓고 적혀 있는 티셔츠 중 이색적으로 보이는 걸 샀다. 나이키 라스 베가스 아울렛에서는 나이키 로고 아래 '라스 베가스'라고 적혀 있는 티셔츠를 팔고 있었다. 안 팔렸으니 아울렛까지 왔을 거라는 그 사실까지 마음에 들었다. 라스 베가스와 나이키 스우시라니 뭔가 안 어울리잖아. 그래서 두 벌이나 사서 요즘도 자주 입는다. 스투시 괌보다 훨씬 자주 입었다. 


그 다음에는 대학 티셔츠에 몰입했다. 대학도 특정 지역에 있는 '로컬 시설' 이란 생각에. 웬만한 대학들은 대학 티셔츠 하나쯤은 판매용으로 만들어둔다. 몇 벌 찾다 보니 게임처럼 혹은 멈출 수가 없어졌다. 도쿄대, 교토대, 제네바대, 뉴욕대, UCLA,, LSE, 이런 곳들의 티셔츠를 홀린 듯 찾아다녔다. 그 대학을 가지 못한 게 평생의 안타까움인 사람처럼, 혹은 내 자식을 저런 대학에 보내는 게 목표인 사람처럼. 나는 둘 다 아니라서 더 신나게 샀다. 


신나는 건 잠깐. 나는 서서히 그런 티셔츠들을 처분했다. 그때 샀던 대부분의 대학 티셔츠는 이제 없다. 너무 크게 GUAM이라 적힌 티셔츠도 버린 지 좀 됐다. 그래픽디자인적 굿즈에 재미가 빠지기 시작했다고 봐도 되겠다. 실제로 로컬 티셔츠는 로고나 메시지만 로컬이고 티셔츠 제조사는 일반 단체 티셔츠 회사인 경우가 많다. 물론 그래도 훌륭한 로컬 제품이다. 다만 내 쪽에서 재미가 줄었다. 입지도 않는데 '로컬이니까'라고 생각하며 사온 티셔츠가 쌓이니까 현실적으로 수납 공간에 한계를 느끼기도 했다. 


티셔츠를 버리며 생각했다. 만약 내 티셔츠 전용 옷방이 15평쯤 된다면 거기에 온갖 로컬 티셔츠나 굿즈 티셔츠를 채웠을 텐데. 로컬 디자인이 주는 재미가 있는 게 확실하니까. 대표적인 게 홋카이도의 니세코에서 산 '노스 재팬' 티셔츠다. 노스페이스 로고와 폰트를 쓰고 '재팬'만 바꿨다. 로컬 티셔츠를 입다가 많이 버리기도 했지만 그런 건 갖고 있게 된다.



01_원고에 나오는 티셔츠 모음. 나이키 라스베가스 티셔츠, 스투시 괌 티셔츠, 도쿄대학교 후디

02_스투시 괌 티셔츠. 왠지 입고 나가면 너무 멋 부리는 것 같아 잘 안 입게 된다. 

03_나이키 라스베가스 티셔츠. 반대로 입고 나가면 멋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사람 같아 더 막 입게 된다. 

04_도쿄대학 후디. 일본 학생운동의 상징적 사건의 무대인 도쿄대 야스다 강당에 가보고 싶었다가 근처 매점에서 샀다. 다른 대학 티셔츠는 거의 버렸는데 이게 남은 이유는 두께가 적당해서다. 간절기에 입기 좋다. 


나는 로컬 티셔츠의 아쉬움을 보완할 로컬 굿즈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로컬 티셔츠의 아쉬웠던 점. 하나. 티셔츠의 본체가 로컬 생산이 아니다. 둘. 부피가 크다. 본체를 로컬에서 만들고 부피도 작은 굿즈가 있을까? 있다. 식품. 현지 식자재로 만든 식품은 그야말로 로컬 생산이다. 심지어 규모가 한정적인 곳은 유통이나 생산 등의 현실적 문제로 로컬에서밖에 판매할 수 없는 물건들도 있다. 그런 생각 끝에 식품을 사기 시작했다.


식품을 사는 건 그곳의 현지 문화를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부산에서 어묵이나 명란을 사다 보면 부산의 식문화를 더듬게 된다. 호남의 장아찌나 김치 등 발효음식을 사면 호남의 향기가 내 집까지 올라온다. 조치원의 단무지 등 한국의 현대사와 이어지는 제품도 있다. 로컬 굿즈 티셔츠가 그래픽디자인의 산물이라면 로컬 식품은 그야말로 현장 제조와 유통업의 산물이다. 현장 제조. 유통 한계 감수. 그야말로 로컬이다.


안타깝게도 로컬 굿즈 그 자체인 식품에도 한계가 있었다. 운송이다. 특히 해외여행에서. 해외여행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때 다양한 음식들이 검역에 걸려 반입 불가다. 육류, 육가공품, 신선 농산물. 씨앗류, 견과류 등.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정책기자단 기사에 따르면 통조림, 염장식품 등 식물 가공식품은 검역대상이 아니라고는 한다. 그러나 관련 규정이 세세해서 잘 알아봐야 한다. 면세점에서 파는 과자 정도 아니면 마음 편하게 사오기 어렵다.



국내 여행 등 안심할 수 있는 곳에서 사와도 한계가 있다. 당연한 이야기인데 음식은 먹으면 없어진다. 로컬 제품의 추억이 꼭 물건으로 남을 필요는 없지만 물건으로 남기고 싶다면 식품을 택할 수 없다. 통조림을 사서 개봉하지 않고 간직하면 보관이야 할 수 있겠으나 먹으려고 만들어진 걸 먹지 않아야 굿즈로 남는다고 생각하면 그 기묘한 순환논리에 마음이 복잡해진다. 그 면에서 모로코에서 사온 민트 티를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지금도 고민이다. 


이런 고민 끝에 나는 해당 지역 중고품 가게로 향했다. 거기에 가면 높은 확률로 특정 국가나 지역이 정확히 드러나는 물건을 만날 수 있었다. 상품화된 굿즈는 아니지만 내 마음 속에서는 단 하나뿐인 '그 동네에서 산 뭔가'가 되는 그 기분이 좋았다. 중고품 가게나 벼룩시장에서 파는 물건은 별로 비싸지도 않으니 예산에 한계가 있는 나에게도 큰 부담이 없었다. 


그런 생각으로 말레이시아 페낭의 벼룩시장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원래 페낭에서 사고 싶던 나름의 로컬 굿즈가 있었다. 그 지역에서 100년 이상 영업한 고급 호텔의 공식 접시. '팔면 좋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페낭에 가보니 무려 그 호텔 굿즈 숍에서 팔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가격은 접시 하나에 10만원 이상. 페낭 현지 물가를 생각하면 대단한 가격이었다. 


그 비싼 로컬 빈티지 접시 앞에서 망설이다 주말에 열리는 현지 벼룩시장에 갔다. 한국인은 물론 동북아시아인은 나 뿐인 그 곳에서 페낭 화교풍 빈티지 그릇을 하나에 1000원 정도에 팔고 있었다. 별 기대를 않고 현금을 안 가져간 게 아쉬울 정도로 나는 마지막 동전 하나까지 탈탈 털어 모든 그릇을 다 사고 다음 날 또 갔다. 그때 샀던 그릇들을 아직도 잘 쓰고 있다.


이런 식으로 나의 로컬 소비는 개념상 점점 산으로 가고 있다. 실제로 산중턱에서 산 로컬 그릇도 있다. 일본 구마모토에는 지역 곳곳의 오래된 민가를 이축한 고민가촌이 있다. 그 민가 중 한 채는 은퇴한 지역 어르신들의 취미 도자기 공방으로 쓰인다. 아마추어 작품이니 가격은 3000원이나 5000원 정도인데 내 눈에는 이거야말로 근사한 로컬 굿즈다. 지금 그 잔에 커피를 부어 마시며 원고를 마무리하고 있다. 


로컬 물건도 여러가지이며 그 모든 건 로컬 마케팅의 산물일 수도 있다. 세계화 이전의 모든 물건은 말하자면 로컬 물건이었다. 세계화는 경쟁력이 떨어지는 현지 생산품을 무력화시킨 뒤 의외의 반대급부적 현상도 만들어냈다. 그게 로컬 선호다. 어디에서나 최적화된 물건을 볼 수 있으니 오히려 최적화가 덜 된 특정 지역의 생산품이 '로컬'이 된다. 현대 사회의 이런 역설을 음미하는 일 역시 로컬을 즐기는 한 방법이 아닐까 한다. 


그런 생각으로 나는 또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 것이다. 엽서나 티셔츠 등이 있는 기념품 코너를. 이런저런 로컬 음식을 파는 냉장고를. 늘 낯익은 동시에 낯선 어딘가의 벼룩시장과 중고품 판매점을. 내 무릎이 허락하는 한은. 벼룩시장에서는 쪼그려 앉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


박찬용 @parcchanyong

잡지 에디터 출신 프리랜스 에디터. 매체에 기고하고 책을 쓰고 그 외 기타 가능한 한 모든 제안에 응한다. 응하는 제안 중에는 방송 출연, 강연, 상품기획, 행사기획, 전시기획 등이 있다. 가장 최근 낸 책 이름은 <오래된 물건에 진심>. 현재 한국의 요즘 브랜드에 대한 책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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