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eoul
더 뜬금없고 수상한 공간으로
남대문극장
극장은 당대의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로 사람들을 만나온 장소다. 북적이는 시장 초입에서 주로 비주류 영화와 검열된 영화를 상영한 ‘남대문극장’도 그중 하나였다. 한동안 극장으로서의 쓰임을 잃었던 건물은 세월이 흘러 더 생경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영화가 아닌 전시와 책과 커피로 ‘따로 또 같이’ 펼쳐지는 남대문극장. 낯설고 새로운 이야기로 가득하다는 점에서 이곳은 여전히 발견의 감각이 빛나는 장소다.
𝗜𝗻𝘁𝗲𝗿𝘃𝗶𝗲𝘄𝗲𝗲 Namdaemun Theater
𝗜𝗻𝘁𝗲𝗿𝘃𝗶𝗲𝘄𝗲𝗿 Jeonghyeon Kim
𝗣𝗵𝗼𝘁𝗼𝗴𝗿𝗮𝗽𝗵𝗲𝗿 Jeonghyeon Kim

남대문극장
전시장・프로젝트 공간・독립서점・카페를 갖춘 로컬 문화 시설. 1959년 남대문시장 초입에 문을 연 옛 극장의 이름과 장소를 이어받아, 동시대 이야기를 일정 기간마다 새로운 기획으로 소개한다. 현재는 세계문학과 총서를 다룬 전시 《세계문학이라는 ‘세계’》가 진행 중이다. 전시장과 프로젝트 공간은 건물 3-4층에, 독립서점과 카페는 1층에 위치해 서로 유기적 관계를 맺으며 콘텐츠를 선보인다. 남대문시장의 커뮤니티와 상품에 바탕을 둔 기획도 준비 중이다.
주소 ㅣ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길 25-8
영업시간 ㅣ 화요일-일요일 11:00-19:00 (월요일 휴무)

없는 게 없는 시장에 나타난 수상한 공간
Q. 원래 이 자리에 실제 극장인 ‘남대문극장’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남대문극장은 1959년 남대문시장 초입에 개관한 극장이에요. 1997년에는 ‘뉴남대문극장’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문을 열었고, 당시에는 주로 비주류 영화를 상영했습니다.
Q. 과거 이 장소에 있던 남대문극장의 이름을 이어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가 실제로 오랜 시간 극장으로 운영된 곳이라는 장소성을 살리고 싶었어요. 처음 이 건물을 만났을 때 유리창에는 거의 다 뜯어진 시트지가 붙어 있었는데요. 창문 한 칸에 한 자씩, 남대문극장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습니다. 함께 기획과 디자인을 진행한 ‘워크룸’ 측에서 그걸 보고 이름을 그대로 이어가자고 제안했어요. 극장의 특성에서 저희 공간 운영 방식의 모티프를 가져오기도 했죠.
Q. 극장의 어떤 점을 참고했나요?
일정 기간마다 상영작이 교체되는 장소라는 점에 주목했어요. 2026년 남대문극장도 동시대 이야기를 전하되 상영작이 바뀌듯 계속해서 새로운 기획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운영하죠. 같은 공간이지만 들어오는 사람과 콘텐츠, 브랜드에 따라 달라지는 매력이 있을 거예요.



Q. 남대문시장은 요즘 소위 핫하고 힙하다는 동네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상권입니다. 서울을 대표하는 시장이자 관광 명소이지만, 그래서 동시대의 이야기와 문화를 전하는 남대문극장의 출현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해요.
남대문시장은 국내 최대 종합시장이에요. 낮에는 소매시장, 밤에는 도매시장으로 운영되고 명동이나 남산타워와 가깝다 보니 관광객도 정말 많죠. 처음 방문한 사람들은 놀랄 정도로 활기 넘치는 지역이에요. 값싼 것부터 희귀한 것까지 별의별 물건이 넘쳐나서 ‘고양이 뿔 빼고는 다 있다’라는 말까지 생겼을 정도인데요. 기존에 남대문을 찾던 세대와 새롭게 유입되는 세대가 섞일 풍경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Q. 성격도 분위기도 확연히 대비를 이루는 공간이 앞으로 어떤 로컬리티를 만들어갈지 궁금하네요.
시장 초입에 줄이 길게 늘어선 호떡집을 지나 건물 로비에 들어서면 갑자기 조용해져요. 알파벳 N과 T가 적힌 수상쩍은 사이니지를 따라 들어온 방문객을 맞아주는 건 포스터 월과 엘리베이터 옆 층별 안내가 전부죠. ‘여기가 맞나’ 싶은 채로 3층에 도착했을 때, 시장과 전혀 다른 공간이 나타납니다. 저희가 이곳을 처음 만났을 때처럼 방문객도 남대문극장을 직접 찾고 발견했으면 해요.


"2026년의 남대문극장도 동시대 이야기를 전하되
상영작이 바뀌듯 계속해서 새로운 기획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운영하죠.
같은 공간이지만 들어오는 사람과 콘텐츠, 브랜드에 따라 달라지는 매력이 있을 거예요."

이질적 요소의 조화와 공존으로 완성한 남대문극장
Q. 영화를 상영하던 극장이 전시장을 필두로 프로젝트 공간 ‘흑백’, 서점 ‘로테크하이파이’, 카페 ‘은막’까지 갖춘 일종의 로컬 문화 시설로 재탄생했습니다. 단일 업종이 아닌 여러 종류의 상업 공간이 공존하는 시설로 구축한 의도는 무엇일까요?
3, 4층에 위치한 남대문극장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에요. 화려한 간판의 시장 가게들 사이에 자리한 입구도 찾기 쉽지 않고요. 관객을 유치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1층에 카페와 서점을 두기로 했습니다. 카페・서점・전시장은 함께 있을 때 어울리는 조합이고, 남대문극장을 찾는 사람들이 좋아할 공간이라고 판단했거든요. 대신 비슷한 구성을 갖춘 다른 시설들과 차별점을 두기 위해 카페와 서점에도 남대문극장의 운영 방식을 적용했어요.
Q. 일종의 큐레이션 카페, 큐레이션 서점으로 운영되는 건가요?
극장이 매번 다른 영화를 상영하듯 정기적으로 여러 로스터리와 커피 작업자, 책을 소개하는 식이죠. 은막과 로테크하이파이를 남대문극장의 입구라고 봐도 무방해요. 다만 전시장과 서점, 카페의 콘텐츠가 반드시 같이 가는 건 아닙니다.



Q. 남대문극장의 첫 전시는 ‘세계문학’을 다룹니다. 극장을 리모델링한 만큼 영화를 주제로 삼거나 남대문이라는 지역을 조명하는 콘텐츠를 선보일 수도 있었을 텐데요. 왜 책이었을까요?
이름 때문에 영화나 남대문과 관련된 내용을 처음 선보이는 것은 너무 예측 가능한 방향이라고 생각했어요. 조금 더 뜬금없고 수상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복잡한 시장을 지나 들어온 남대문극장에서 혼자 편안히 즐길 수 있는 소재가 뭘까?’ 그 답이 책이었습니다. 이 공간에 편히 머물다 가기를 바랐고, 책이야말로 남대문극장을 홀로 편안하게 돌아다니며 즐길 수 있는 소재였어요.
Q. 책 중에서도 세계문학과 총서에 집중한 이유는요?
지금, 이 장소와 가장 어울리지 않는 것을 고민하다 떠오른 것이 세계문학이었어요. 2026년의 남대문시장과 세계문학이라니, 전혀 말이 안 되지만 그래서 매력적인 조합이잖아요. 한때 우리에게 세계문학총서는 한국 바깥을 상상할 수 있도록 돕는 유일한 티켓이었어요. 이제 세계문학은 지금과 다른 시간대를 열어주는 타임머신 같은 것이 됐고요. 남대문에서 기원전 그리스로, 19세기 파리로, 그리고 내일의 세계로 떠나볼 수 있는 셈이죠.


Q. 방대한 규모의 책들을 어떤 방식으로 전시장에 구현했나요?
여러 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을 모으는 일부터 시작했어요. 되는 대로 목록을 작성해 최대한 모으다 보니 이 책들을 매력적으로 보여줄 방법이 필요했죠. 여러 의견이 오가는 가운데 윤율리 큐레이터가 발간 규모에 따라 10권, 30권, 50권, 100권으로 나눠 각 공간에 맞는 방식으로 보여주자고 제안했습니다. 숫자는 현재 발간 중인 책 과 옛날의 책들을 함께 섞을 수 있고,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장치거든요. 자연스럽게 100권 분류의 총서를 4층의 가장 큰 공간에, 나머지는 3층의 회전형 서가에 배치했어요. 일정 시기마다 다른 방식으로 선보일 예정이에요.


"조금 더 뜬금없고 수상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복잡한 시장을 지나 들어온 남대문극장에서 혼자 편안히 즐길 수 있는 소재가 뭘까? 그 답이 책이었습니다. 이 공간에 편히 머물다 가기를 바랐고, 책이야말로 남대문극장을 홀로 편안하게 돌아다니며 즐길 수 있는 소재였어요."
최소한의 개입, 보존하며 보완하기
Q. 전시장을 비롯해 구석구석 세월의 흔적이 엿보입니다.
전시장은 10년 전에 리모델링을 거쳤고, 현재 전시 관람객에 한해 웰컴 티를 제공하는 프로젝트 공간 흑백에는 더 오래전에 지어진 구조가 그대로 남아 있어요. 전체적으로는 엉망진창 같아 보여도 세월의 흔적이 담긴 진짜 공간이라고 생 각해 이걸 최대한 살리고 싶었죠. 옛것과 새것이 섞이기 바란다는 요청에 공간 디자인을 맡은 조현석 디자이너는 ‘최소한의 개입’이라는 명료한 문장을 제시했습니다. 설계와 시공 모두 이 전제를 바탕으로 진행했어요.
Q.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남겨두고, 어떤 부분에 변화를 줬나요?
3층 벽면에 보이는 시공 팀의 메모와 접착제 흔적들은 만져도 부드러울 만큼 다듬기만 하고 그대로 남겨뒀어요. 이 모습이 새로 제작한 깨끗한 흰 벽과 기이하게 어울려요. 일부 푸른색으로 칠한 구역과 거친 콘크리트가 나란히 이어진 모습도 그대로 보존했고요. 흑백 구역을 지지하던 기둥을 테이블로 개조하면서 구조는 다른 방식으로 보완하기도 했습니다. 저희와 워크룸의 기획, 조현석 디자이너의 시안을 ‘이각건설’에서 디테일하고 멋지게 구현해 줬습니다.



Q. 원래 상영관으로 이용됐다고 하는 4층 공간은 어떤가요?
상영관 벽체를 뜯으니까 단열재로 추측되는 은색 필름지가 나오더라고요. 그 느낌이 좋아 오염을 제거하고 최대한 비슷하게 복구했습니다. 이쪽 공간 바닥에 깐 원목 쪽마루는 워크룸 측의 제안으로 새롭게 제작한 거예요. 마루 하나만 깔아도 안전성을 확보하고,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시도해 볼 수 있을 거라는 의견을 줬어요. 이 마루가 남대문극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요소가 아닐까 싶네요.
Q. 남대문극장 내부의 조용하고 한적한 분위기가 창 너머로 보이는 로컬 풍경과 상반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더 매력적이에요.
북적이고 활기찬 시장의 속성을 차단하기보다는 보완하는 쪽으로 기획했어요. 안과 밖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이질적일수록 각각의 공간에 몰입하기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계절과 날씨의 영향을 받고 사람들의 에너지가 넘치는 시장, 차분한 환경에서 느린 호흡으로 전시를 즐길 수 있는 남대문극장의 차이가 한눈에 드러나도록 강조했어요.


"북적이고 활기찬 시장의 속성을 차단하기보다는 보완하는 쪽으로 기획했어요.
안과 밖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이질적일수록 각각의 공간에 몰입하기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헤매고, 만나고, 발견하는 장소
Q. 건물 3-4층에 숨은 전시장과 1층에 자리한 서점 & 카페를 함께 이용하는 동선이 다소 불편할 수 있겠다는 우려는 없었나요?
동선에 관해서는 여전히 고민이 많아요. 다만 모든 것을 명확히 설명하고 안내하지 않는 건 ‘직접 찾고 발견하는 재미’가 있는 공간을 지향하기 때문이에요. 위치를 알려주는 사이니지를 최소화한 것도 그래서예요. 서울 시내 한복판에 층고는 높은데 기둥은 없는 널찍한 공간을 보는 게 흔한 경우는 아니잖아요. 처음 이곳을 발견했을 때처럼 다른 사람들도 이 생경한 느낌을 경험할 수 있게 하자고 뜻을 모았습니다.
Q. 답을 알려주기보다는 헤매고, 만나고, 발견하는 과정을 설계한 셈이네요.
북적이는 시장 속에 있다가 홀로 다른 세상에 떨어진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이 건물 자체가 그랬거든요. 어디는 거친데 어디는 리모델링되어 있고, 어디는 운영 중인데 또 어디는 아무것도 없고... 혼란스럽지만 자연스러운 비정형의 모습이 근사했어요. 여기서 우리가 만들 수 있는 가장 좋은 방향은 '아예 섞어버리기'라고 판단했습니다. 시장에서 쉽게 보기 힘든 그래픽 디자인, 옛것과 새것이라는 서로 다른 시간성이 한눈에 들어오는 공간 디자인처럼요. 애매하게 하나의 공간으로 정의하거나 규정하지 않는 게 중요했어요.

Q. 접근성의 한계를 보완하려면 남대문시장을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붙드는 장치가 필요할 텐데요. 로테크하이파이와 은막의 간판이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내는 듯 보여요.
그 자체로 사람들이 좋아하는 서점과 카페인 동시에 방문객을 남대문극장으로 안내하는 역할을 하길 바라요. 워크룸에서 내용이 계속 바뀌는 남대문극장의 방식을 반영하는 간판을 만들자고 제안한 이유죠. 서점의 모듈 간판은 옛 극장에서 상영작을 알리는 리더보드reader board를 한글로 해석한 결과물이고, 카페에는 세 개의 면이 돌아가며 여러 내용을 보여주는 트라이비전trivision 간판을 달았습니다. 지켜보니 확실히 방문객들이 간판 사진을 많이 찍어 올리시는 것 같아요.(웃음)


"모든 것을 명확히 설명하고 안내하지 않는 건 ‘찾고 발견하는 재미’가 있는 공간을 지향하기 때문이에요.
처음 이곳을 발견했을 때처럼 다른 사람들도 이 생경한 느낌을 경험할 수 있게 하자고 뜻을 모았습니다. "

남대문시장의 새로운 경험과 이야기로
Q. 정식 오픈 이후 손님들의 반응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소감이 궁금해요. 공간을 준비하며 기대했던 바와 좀 다르던가요?
예상보다 많은 분들이 길을 찾기 어려워하더라고요. 바로 앞에서 호떡과 떡볶이를 사 먹은 사람들이 로비까지 들어오기도 하고요. 그래도 나름대로 잘 즐겨주시는 것 같아요. 로테크하이파이에서 한 중년 부부가 그러더라고요. “드디어 남대문시장에도 이런 곳이 들어오는구나.” 은막에서 이렇게 말한 직장인 분들도 있었습니다. “남대문시장에 이런 ‘느좋’ 카페가 생기다니.”
Q. 남대문시장에 새로운 문화적 경험을 만들어가기 위해, 주변 지역 풍경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로컬 관점에서는 어떤 고민과 시도가 벌어질까요?
지속적으로 시장의 커뮤니티와 상품을 관찰하며 콘텐츠를 만들어 보려고 해요. 가까운 시일에는 앤트러사이트가 입점해 있는 은막에서 남대문시장 과일을 구입해 만든 시장 과일 주스를 계획 중이고요. 남대문시장과 관련된 것, 시장에 없어서 새롭게 소개해 보고 싶은 것들을 적절한 리듬으로 선보일 예정입니다. 전통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으레 기대하는 당연한 풍경에서, 생경함과 즐거움을 경험하고 가기를 바라요. 각자의 이유로 힘들었을 사람들에게 시간과 공간의 단절을 시켜주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극장은 영화를 상영하는 걸 넘어 시간을 멈춰주는 곳이기 때문에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오래된 벽, 기둥, 누군가의 욕심으로 잘못 칠해진 벽, 자신의 임무를 다하지 않고 버린 사람들이 남긴 공사 현장···. 어쩐지 이곳이 남일 같지 않았어요. 최대한 리모델링하지 않은 채 세상에 전시하고 싶었습니다. 이게 진짜 모습이니까요.
Q. 마지막으로 남대문극장을 더 알차고 풍부하게 즐기기 위한 팁을 하나 주신다면요?
내용이 계속 바뀌는 공간인 만큼 여러 번 방문하시길 권합니다. 장소는 같은데 들어오는 사람과 콘텐츠에 따라 경험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주목해 주세요.

더 뜬금없고 수상한 공간으로
남대문극장
Seoul
𝗜𝗻𝘁𝗲𝗿𝘃𝗶𝗲𝘄𝗲𝗲 Namdaemun Theater
𝗜𝗻𝘁𝗲𝗿𝘃𝗶𝗲𝘄𝗲𝗿 Jeonghyeon Kim
𝗣𝗵𝗼𝘁𝗼𝗴𝗿𝗮𝗽𝗵𝗲𝗿 Jeonghyeo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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